사람들은 원시 시절 말을 타고 광야를 달리며 분노를 가라 앉혔을상 싶습니다.

현대사회로 오면서 말 대신 자동차를 타고 고속 질주속에 몸을 내던져 분노를 푸는 것으로

형태가 바뀌었습니다.

물론 둘 다 극도로 위험한 일이지만 원시 사회는 생명체의 등에 엎였기에 그 위험의 한계를

가늠 할 수 있었고, 말이라는 생명체의 한계가 심장 소리와 체온으로 느껴졌기에 정도 조절이

가능 했습니다.

그러나 현대로 오면서 사람의 다양한 분노는 무생물만이 받아줄 수 있다는 절박함에 위험 질주로

이어질 수 있는 개연성이 매우 높아졌음을 부인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물론 자동차는 주인의 분노를 삼키며 위험을 무릅쓴 질주를 감행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무생물이라고 위험을 못 느낀다는 생각은 자연 무시의 모독이건만--------

 

그때마다 깊이 흐르는 무생물의 눈물과 전해오는 아픔을 이해하기 어려운것이 사람입니다.

주인의 분노가 자신을 학대해서라도 풀릴 수 있다면 자동차는 그따위 아픔 정도는 이겨내겠다고

마음 가라앉혀 봅니다.

 

한 고객님이 악기(기타)를 선물로 보내 주셨습니다.

자동차 연구로 폐쇄 공포와 삶에 대한 회한이 가득차, 폭발 일보 직전의 분노를 알아차리신 것인지?

너무 고맙고, 감사 했습니다.

악기는 살아 있는 무생물이라서 소중히 다루지 않을 수 없으며, 분노를 폭발 시키지 말고

아름다움으로 달래야 한다는 멧세지가 숨어 있어 보입니다.

모두가 매일 매일이 행복하고, 분노치 않는,기뿐 마음으로 삶을 가꾸어 나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