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무엇인가를 억압하고 괴롭히면서 희열을 느끼는 묘한 이중성이 잠재되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18세기 점령의 시대에는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들을 노예로 삼고 착취와 탄압을 서슴없이

행하면서도 그러한 능력이 과시와 향락의 표상인양  연일 점령과 착취로 얼룩진 역사였습니다.

그도모자라 자중지란을 격으면서 오늘의 친구는 내일의 배신과 모함,그도모자라 향락적, 과시적, 종교적,

이념적 반목의 역사는 쉴 사이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아픈 현실에는 엄청난 노예사냥과 매매, 인권탄압,

전쟁, 상호 살해, 노예간 대리전, 미움,증오, 학살로 이어지는 질곡의 역사는수세기에 걸쳐 계속되고

말았습니다. 

악순환을 거듭하던 인류의 역사는 인간을 괴롭히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않았는지 19세기 접어들면서

느닷없이 무생물을 노예화하기 시작하였고, 착취와 학살의 속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말았습니다.

20세기에는 그 욕망과 힘의 과시가 하늘을 찔러,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의 참담함만이 널프러지는 

무생물까지 앞세운 잔혹사를 멈추지 못한채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21세기의 노예가  다름아닌 자동차, 군함, 전투기, 미사일, 살상 무기,거기에 원동력을 발생시키는 파괴의

현장을 인간 대신 엔진을 앞세위 속전속결, 대량화, 게임하듯 불쌍함조차 느낄수없는 무인화까지 서슴없이

계속하면서 살상 장비 경쟁으로 치닫고 있음을 개탄치 않을 수 없습니다.

 

이토록 흉폭해져만 가는 인간사에 희생양의 대상으로 끼워들고만 불쌍한 엔진과 자동차의 노예화가

계속되는한 인류 잔혹사는 잠시도 멈출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노예화에 혈안되어가는 엔진을 포함한 자동차를 해방시켜,  평화와 인간 본연의 행복 추구의 친구로

전환하지 않는한, 인류 불행사는 계속 될 수 밖에  없다는데 이견을 찾을 수 없습니다.

바로 21세기 노예 해방만이 인류 본연의 평화와 행복 시대로 진입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해방운동은 자동차가 차디찬 무생물이 아니며, 인간의 아픔과 슬픔 기쁨과 환희, 사랑 마져도 함께 나누고

공감, 공진 할 수 있는 배신과 반목이 없는 의리와 품위를 지켜주는 친구로 승격시켜줌으로서 가능 할 것입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바로 21세기 노예해방을 가능케하는 VID와 그 페밀리(FAMILY)가 존재하고 있음입니다.

인류의 평화와 행복 추구의 실현은 구호나 말로 이룰 수 없으며, 실천하는 지혜로 찾아야 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명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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